갓생살기 위한 카테고리

제주도 4.3사건 꼭 알아야 됩니다!!!!

우해니 2023. 3. 27. 22:50

여러분들 제주도 라는 단어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맑은 바다, 휴양지, 그리고 그림같은 풍경들. 

​여행이나 휴양지로 빠지지 않는 제주도 .

오늘은 이렇게나 이쁘고 아름다운 제주에도 

아픈 사건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때는 1947년 3월 1일. 제 28주년 3.1절 제주도 대회가 열리고 제주시에 위치하는 

북국민학교의 3.1절 행사가 끝나자 군중들은 거리로 나가 가두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기마경찰이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가자 군중들은 항의를 하며 기마경찰에게 

돌을 던지자 그 주변에 있던 무장경찰들이 무작위로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 경찰의 발포로 제주주민 6명이 희생되고 지금의 제주 4.3 사건의 기폭제가

 이날 3.1절 (3.1사건)에서 시작이 되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무장경찰의 발포로 주민이 사망하고 

1947년 3월 10일부터 세계적으로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이 되었다.



제주도의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섬' 이라고 지목하며 응원경찰과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제주도를 장악하기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국군과 경찰들이 마을을 장악하고 밤에는 인민 유격대와 좌익 세력들이 점령하기를 반복하면서

 밤에는 좌익들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이 괴뢰군과 붙는다며 인민재판으로 죽이고

 낮에는 국군과 경찰이 나타나 의심스러운 징후가 보인다면서 민간인을 무작위로 처형했다. 

그들은 또한 '빨갱이사냥' 이라는 구실로 민심을 자극시키며 


4.3사건의 발발한 한가지의 요인이기도 한다. 


이러면서 제주도는 일제에 수탈된 것도 모자라 섬 전체가 지속적인 기근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1948년 4월 3일 새벽2시 한라산의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를 필두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밤낮은 끊임 없이 무차별한 처형으로

그리고 한반도 전국에서는 5.10 선거를 반대하는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총선을 앞두고 미군정과 평화협상 (4월28일) 성사 된 사흘만에 

​5월1일에 우익청년단이 제주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는 '오라리사건'이 벌어지면서 

​2일이 지나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 공격을 명령하면서 협상이 깨어졌다.


이러면서 제주도에서는 계속되는 진압과 희생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정부를 수립된 뒤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 병력과 강경 진압작전으로 대대적으로 제주 전역을 토벌작전이 들어가게 된다.

 


한 날에는 10월 11일 제주도 경비사령부 설치 후 해안에서 5Km이상 들어가 

​중산간지대를 통과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 까지 발표가 되면서 

​군경 토벌대는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하기 시작한다.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

제주도에선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되며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키고도 

소개령에 의해 해안마을까지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그러면서 학살은 군경 토벌대만 저지른 것이 아닌 

무장대들은 경찰가족과 우익인사까지 살해하면서


 복수는 복수를 낳고 증오심으로만 가득차 

민간인들의 희생이 극에 달했다.


그러다 1949년 3월 "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 라는



 군이 지역 주민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산을 하였으나 그것 또한 지켜지지 않아


 1,600명이 총살당하거나 전국의 형무소로 

보내어졌다. 



힘든 시간을 지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며


 주민 2만5,000명 ~ 3만명의 희생과 

7년 7개월의 긴 사태의 막을 내린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제일 극심했던 사건.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알아 보았는데요 


글을 정리하면서 드는 생각으로는 정말 무수히 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주변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계시는 



분들도 있는 만큼 단순히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과 함께 



또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